빅 데이터가 외칩니다. "도큐 개X끼!" 해외 기사 번역

원문 : http://pc.watch.impress.co.jp/docs/column/config/20140214_635098.html

예능 프로나 뉴스 같은 정보 프로그램에서 올림픽 생중계까지, SNS는 곳곳에 노출된다.
그런데 SNS의 발언은 과연 만민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일까?

소리없는 대중의 목소리란

마이크로소프트의 Power BI for Office 365는 액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빅 데이터를 연구할 수 있도록 한 챌린지다. 요컨대 빅 데이터의 민주화, 현장 사원이 간편하게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안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즈니스의 과제를 IT를 이용해서 해결하려면 어제까지 버리고만 있었던 데이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액셀을 빅 데이터의 입구이자 출구로 만들어서 현장 최전선의 사원들이 빅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참고로 지금 액셀을 사용할 수 있는 이용자는 전 세계에 10억 명이 있다고 한다. 그 10억 명이 빅 데이터를 분석하게 되면, 이제껏 보지 못한 뭔가가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뭔가가 들리는 것이다.

지하로 들어간 전철역과 백화점

Power BI for Office 365를 일찌기 도입한 한 곳이 도큐백화점이다.
도큐백화점은 도큐전철의 완전자회사로, 속칭 전철계열 백화점으로 유명하다. 시부야는 도큐백화점의 본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도큐전철이 도쿄 시부야 주변 재개발에 즈음해 도쿄메트로 후쿠토신선(부도심선)과 상호 직통운행을 개시하며 도요코선 시부야역을 지하로 이전시킨 게 기억에 선하다. 2013년 3월 16일에 있었던 일이니 이제 곧 1년이 된다.(역주 ; 기사 작성일시 2014년 2월 14일)

도요코선 시부야역 지하이전으로 인해 시부야역 주변은 대혼란에 빠졌다. 이용객의 동선이 크게 변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시부야는 지하철 역이 3층에 존재할 정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진 교통의 요지다. 도큐백화점은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백화점이 있다는 편의성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도쿄메트로 백화점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공사는 아직도 진행중이기에 도요코선 시부야역, JR야마노테선, 게이오 이노가시라선 시부야역, 도쿄메트로 긴자선 시부야역을 잇는 연결통로는 차라리 미로나 다름없다. 통로 동선은 외우면 끝이지만, 애초에 동선 자체가 길다.

도요코선 이용자 중에선 시부야 쇼핑을 포기하고 그대로 부도심선을 지나 2역 너머 신주쿠 산초메역 까지 가서, 역과 직결된 이세탄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잃어버린 매장

도요코선 시부야역 지하 이전 후 시부야 지역의 도큐백화점은 역에서 좀 떨어진 본점, 역에 붙어 있었던 도요코점 서관, 남관, 동관 중에서 가장 오래된 동관이 폐쇄됐다. 동관은 1층부터 7층까지 매장이 있었으나 모두 서관과 남관에 합병되었다. 즉 매장의 3분의 1이 줄어든 것이다.

SNS의 빅 데이터를 분석하던 도큐백화점은 도요코선 시부야역 지하 이전 후, 이용자들의 “도큐 개X끼!“라는 의견이 많이 올라온 걸 발견했다고 한다. 난폭한 표현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개최한 기자회견에 게스트 출연한 도큐백화점 영업정책실의 스자키 나오야 씨가 직접 발언한 내용이다.

비 전문가 시점에서도 당연히 나올 말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아무튼 이용자들의 직설적인 코멘트를 눈 앞에 두니 불편해진 게 충분히 실감이 되더라는 것.

빅 데이터가 없었다면 발각이 늦었을 거라고 특별히 언급한 내용 중에, 폐관된 동관 7층의 유아용품, 장난감 매장이 없어졌던 걸 예시로 들었다.

SNS의 빅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이 도큐 백화점의 매력이란 걸 발견한 것이다. 이런 건 매상 데이터로도 알아내기 힘든 내용이다. 매장이 사라져버렸으니 매상이 제로가 되는 건 당연한 일.
0은 뭘로 곱해도 0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더해야하는 것이다.
그걸 발견한 도큐백화점은 재빠르게 유저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나섰다고 한다. 물론 역에서 좀 떨어진 도큐 본점에는 아동복 매장이 있지만, 역 바로 앞에서 사던 아동복을 본점까지 가서 사기엔 이용자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이용자가 시부야를 지나서 신주쿠까지 가게 된 것이 역에 인접한 전철계열 백화점이라는 편의성을 버려서 뿐만이 아닌, 사고 싶었던 아동복을 안팔게 된 것도 이유였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스자키 씨는 만약 빅 데이터를 분석하지 않았다면 대처가 훨씬 더 늦었을 거라고 한다. 조만간 도큐백화점 도요코점에 아동복 매장이 돌아오지 않을까.

SNS와 빅 데이터

이처럼 SNS와 빅 데이터를 활용하여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할 말이 있다면 트위터에 쓰는 것 만으로도 의견이 반영되는 가능성이 열렸다. 그야말로 소셜 시대를 상징하는 사례인 것이다.

지금까지 듣지 못한 목소리가 들리게 된 점을 들면 SNS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툴이다. 비록 팔로워가 몇 명밖에 없어도 생각한 걸 트위터에 적어보는 건 중요하다. 그 얘기를 듣는 건 팔로워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트위트가 빅 데이터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뭔가를 창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빅 데이터를 분석하는 입장에서는 트위터의 발언층이 사회의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빅 데이터가 아무리 거대해진다 한들, 그 목소리가 빅 데이터에 들어갈 일은 없기 때문이다.

빅 데이터는 지금까지는 데이터 전문 분석가가 아니면 분석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들도 놓치는 것이 많다. 분석가는 비즈니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욱 마이크로소프트가 일으킨 빅 데이터의 민주화로 더욱 현장에 가까운 스태프나 관리자가 빅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게 되어 새로운 마케팅 수법이 탄생하고 큰 비즈니스 찬스가 생기는 거다.

“저 타이핑 합니다”라는 말은 평범한 주부가 홈페이지라고 불리던 자신의 웹사이트에 개인적인 의견을 적는 현상을 소설가 스가야 미쓰루 씨가 리포트 타이틀로 삼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시대에 맞춰서 얘기하면 “저 트위터 합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트위터의 140자 제한은 하고 싶은 말을 간편하게 할수 있게 해준 게 사실이지만, 트위터 또한 특정 소수의 편중된 의견인 것도 사실이다.

POS데이터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손님의 정보는 알려줘도, 가게에 오지 않는 손님의 논리는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트위터를 쓰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트위터가 아무리 거대해지고 가시화가 진행되어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SNS는 결코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란 걸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베 신조 전후 70년 담화 전문 번역 해외 기사 번역

종전 70년을 맞이하여, 과거 대전의 여정, 전후의 행보, 그리고 20세기라는 시대를 우리는 고요한 마음으로 되돌아보며, 그 역사의 교훈 속에서 미래를 향한 지혜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여년 전, 세계는 서양열국을 중심으로 광대한 식민지가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기술우위를 배경으로 한 식민지 지배의 파도는 19세기 아시아에도 들이닥쳤습니다. 일본에게 있어 그 위기감이란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입헌정치를 수립하며, 독립을 지켜냈습니다. 러일전쟁은 식민지지배 하에 있던 수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전 세계가 휩싸인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족자결의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그 때까지 진행되던 식민지화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이 전쟁은, 천 만명의 전사자를 낸 비참한 전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강력히 바라는 마음에 국제연맹을 창설하고, 부전조약을 만들었습니다. 전쟁 자체를 위법화하는 새로운 국제사회의 조류가 생겨났습니다.


당시에는 일본도 발걸음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세계공황이 발생하고, 구미열국들이 식민지경제를 포괄하는 경제블록화를 진행하자, 일본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자 일본 내에서 고립감이 고조되고, 외교적 정치적으로 막힌 길목을 실력행사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국내 정치 시스템은 이를 제지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은 세계의 대세를 잃고 말았습니다.


만주사변, 그리고 국제연맹 탈퇴. 일본은 차례로 국제사회가 장절한 희생 끝에 세우려 했던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자>가 되어갔습니다. 나아가야할 길을 잘못 잡고, 전쟁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70년 전, 일본은 패전했습니다.


전후 70년을 즈음하여, 국내외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 앞에, 깊게 머리를 조아려, 통석의 염을 표함과 함께, 영겁의 애도를 표합니다.


과거 대전에서는 300여 만 명의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국의 나아갈 길을 걱정하며, 가족의 행복을 바라며 전장에서 쓰러져 간 사람들. 종전 후 혹한 아니면 작열하는 먼 이국 땅에서 기근과 질병과 싸우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투하, 도쿄를 비롯한 각 도시에서 일어난 폭격, 오키나와 지상전에서 수많은 시민 분들이 무참히 희생되었습니다.


전화를 주고받은 나라에서도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국, 동남아, 태평양 열도 등, 전장이 된 지역에서는 전투 뿐만 아니라 식량난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희생되었습니다. 전장 뒤에는,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아무 죄없는 사람들이 측량할 수 없는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 역사란 것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가열찬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자 주어진 인생, 꿈,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다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을 음미할 수 있는 순간, 지금이야말로, 할 말을 잃은 채, 단장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토록 존엄한 희생 끝에 존재하는 지금의 평화. 이것이 전후 일본의 원점입니다.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해서는 아니됩니다.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적 위협과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두 번 다시는 이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하며, 모든 민족에게 자결의 권리가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지난 대전에 대한 깊은 회오(悔悟)의 염과 함께 우리나라는 그렇게 맹세했습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를 만들어, 법의 지배를 존중하며, 일관성있게 부전의 맹세를 견지하여 왔습니다. 70년 간에 이르는 평화국가로서의 행보에, 우리는 조용히 긍지를 품으며, 이 움직이지 않는 방침을 앞으로도 관철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대전에서의 행위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왔습니다. 그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 된 아시아 사람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고, 전후로부터 일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대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단,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더하더라도, 가족을 잃은 분 들의 슬픔, 전쟁 잿더미에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괴로운 기억은 앞으로도 결코 치유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만 합니다.


전후 600만 명이 넘는 생존자가 아시아태평양 각 지에서 무사히 생환하여 일본재건의 원동력이 된 사실을. 중국에 남겨진 300여 만 명의 일본인 자녀들이 무사히 성장하여 다시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포로가 되었던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분들이 오랜 세월동안 일본을 찾아와서 서로의 전사자를 위해 위령을 계속해왔다는 사실을.


전후에서도 고통을 겪은 중국인 여러분과, 일본군에 의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한 포로 분들이, 그렇게 관용을 보이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의 갈등이 있었을 것이며,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했겠습니까.


그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야만 합니다.


관용의 마음으로 인해 일본은 전후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전후 70년을 맞이한 오늘에 즈음하여, 우리나라는, 화해를 위해 힘을 쏟으신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표하고자 합니다.


일본에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이제는 전 인구의 8할을 넘었습니다. 그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 그리고 그 후의 세대에 까지,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게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일본인은, 세대를 넘어서 과거의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를 계승하고 미래로 넘겨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부모, 그리고 그 부모의 세대가 전쟁 폐허와 기근의 나락에서 생명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세대, 그 뒤 세대를 향해 미래를 이을 수가 있는 것은, 앞선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함께 적으로서 치열하게 싸웠던 미국, 호주, 유럽 각 국을 비롯하여 정말로 수많은 나라들이 이해관계를 넘어 선의와 지원의 손을 내민 것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미래로 전달해야만 합니다. 역사의 과거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야 합니다.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힘을 쏟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닥친 벽을 힘으로 타개하려고 했던 과거를 이 가슴에 계속 새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어떠한 분쟁도 법의 지배를 존중하여, 무력 행사가 아니라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 원칙을 앞으로도 엄격히 지키며 세계 각 국에도 지키도록 할 것입니다.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핵무기의 불확산과 궁극적인 폐기를 위해, 국제사회에서 그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20세기에, 전쟁에서 수 많은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가 깊은 상처를 입었던 과거를 이 가슴에 새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그러한 여성들의 마음에 항상 다가가는 나라이길 원합니다. 21세기야말로 여성의 인권이 상처입는 일이 없는 세기로 만들기 위해 세계를 주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블록화가 분쟁의 씨앗을 키웠던 과거를 이 가슴에 새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어떠한 나라의 자의에도 좌우되지 않으며, 자유롭고 공정하며 열려있는 국제경제 시스템을 발전시키며, 개발도상국 지원을 강화하여, 세계의 더 나은 변영을 견인할 것입니다. 번영이야말로 평화의 기초입니다. 폭력의 온상이 될 수 있는 빈곤에 맞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의료와 교육,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더욱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국제질서의 도전자가 되어버렸던 과거를 이 가슴에 새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기본적가치를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견지하여, 이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손을 잡고, <적극적평화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어, 세계 평화와 번영에 지금보다 더욱 공헌할 것입니다.


종전 80년, 90년, 100년을 향해 이러한 일본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그 결의를 다집니다.


헤이세이 27년(2015년) 8월 14일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



출처 : 산케이 신문 웹사이트 (http://www.sankei.com/politics/news/150814/plt1508140016-n1.html)



블로그 재시동

기존 글을 모두 비공개처리하고 블로그를 재 시동합니다.

여러가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면서 가장 불편한 것 중 하나는 역시 내가 느꼈던 것 읽고 썼던 것이 축적되지 않고 흘러간다는 점이었습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어느것 하나 아카이빙의 관점에서는 활용이 거의 불가능한 것들.

결국 어느 시점에서의 내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었나 찾아보려면 블로그밖에 없더라고요.
해서 블로그를 재개합니다.

요새는 잡지 기사나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많고, 하고 싶은 말도 종종 생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기점으로 이 블로그에 게재되는 글들은 신변잡기보다는 외신의 번역기사와 자신의 코멘트가 주된 내용이 될 예정입니다.

※번역 기사에 대해서는 원 출처가 되는 언론사 및 출판사에 저작권이 있으며, 상업적 무단 도용을 제외한 모든 경우에서 제 자신의 번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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